거리로 나간 인권영화제 ‘그들의 심의를 심의한다’(한겨레신문)

거리로 나간 인권영화제 ‘그들의 심의를 심의한다’(한겨레신문)

거리로 나간 인권영화제 '그들의 심의를 심의한다'

 [2008-05-14 18:06]

12회 인권영화제 마로니에 광장에서 열려
'등급 안받은 영화 상영하면 처벌'...상영관 못찾아
영화제쪽 "비영리영화제는 상영작 심의 면제해야"
 
 
하니Only 허재현 기자
 
올해 12회를 맞는 인권영화제가 상영관을 버리고 거리로 나왔다.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한국공연윤리위원회(공윤)의 사전검열 제도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상영 등급' 결정을 받지 않으면 극장 상영을 못하도록 한 현행 심의 제도에 항의하려는 의도다. 그래서 이번 영화제는 '그들의 심의를 심의한다'는 주제로 열린다.

  김일숙 인권영화제 총감독은 "상영등급을 분류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면 처벌받게 돼 있는 현행 법률 때문에 합법적 상영관을 찾지 못했다"며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서 거리영화제로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를 보면, 영등위 심의를 거쳐 등급을 부여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위법이다. '영비법'을 어기고 상영하는 영화업자나 개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단, 현행 영비법은 사전심의 예외 조항을 두고 영진위가 추천하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나 문화관광부 장관이 등급 분류가 필요없다고 인정한 영화 등은 상영등급 분류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인권영화제 주최쪽이 영진위에 사전심의 면제를 요청했다면 '거리의 축제'로 치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제 쪽은 이 마저도 거부했다.

 김 감독은 "사전심의 면제를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 자체도 국가의 검열을 받고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며 "영국과 캐나다처럼 우리나라도 비영리영화제는 상영작 심의를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인권영화제는 사전심의를 일관되게 거부해 왔지만, 큰 문제없이 영화제가 열려왔다. 지난해 인권영화제도 사전심의를 거부한 채 서울 ㅇ 극장에서 상영됐다. 그런데 올해 문제가 불거졌다. 정권 교체 여파로 사전심의를 거부한 인권영화제에 장소를 빌려줬다가 처벌받게 될 것을 염려한 극장들이 장소대여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극장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사전심의 받지 않은 인권영화제에 정부가 딱히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허가했지만, 올해부터 정권의 성격이 바뀌어 함부로 대여해줬다가 업주가 처벌받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털어 놓았다.

 영화제 쪽은 상영관 대관 문제의 핵심이 극장들을 움츠러들게 만든 현행 영비법에 있다고 보고, 영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 감독은 "현행 영비법의 사전심의 예외 조항이 있지만, 문화관광체육부와 영등위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며 "영국과 캐나다처럼 비영리영화제에 한해 사전 심의를 면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도 "새로 생기는 영화제의 경우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인권영화제처럼 몇년씩 개최하며 시민들에게 검증된 영화제에 대해선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게 좋지 않나" 라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이번 영화제를 주최한 인권운동사랑방를 비롯, 문화연대·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의 단체들은 '표현의 자유확대를 위한 영비법 개정 공동행동(준)'을 결성해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30일 개막하는 인권영화제에 앞서 21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표현의 자유와 영비법의 문제점' 토론회도 열 계획이다.

 

  허재현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