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틀리지’ 않은, ‘다른’ 사람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8/01/31
1월 18일 목요일, 추위에도 어김없이 세 번째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세미나 얘기에 앞서 소소한 소식을 전하자면,
<동영상1. 23개의 초가 꽂혀있는 레드벨벳 케이크와 23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축하하고 있는 활동가들>
짠! 사무실에 모두 모인 활동가들이 23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축하하며 촛불을 불었답니다. 자원활동가 지윤님이 보내주신 아주 달콤한 레드벨벳 케이크였어요. 함께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훈훈한 마음으로 세미나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앞의 두 세미나와는 달리 이번 주부터는 주제와 관련된 영화를 1~2편씩 보아야 했어요. 물론 지금까지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영화들이었답니다. 그래서 자원활동가들은 두 번째 세미나가 끝난 뒤 한 주 동안 영화를 보기 위해 각자 시간이 되는대로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많은 활동가들에게 사무실로 가는 길은 여전히 조금 헷갈렸을 테고(저만 그런 거 아니겠죠?), 점점 매서워지는 추위에 옷을 바짝 여미어야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사무실에 들르는 횟수가 늘어나고 반가운 얼굴을 자주 마주할수록 사무실은 금세 나의 공간처럼 익숙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림2. 자원활동가 윤리님이 쓴 세 번째 세미나 ‘정상/비정상?’의 발제문>
세 번째 세미나의 주제는 바로 ‘정상/비정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함께 보았던 영화는 <씨씨에게 자유를!>(22회 상영작)과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20회 상영작)이었는데요. 세미나 주제와 두 편의 영화는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줍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그 ‘정상’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어째서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으며, 때때로 배제되고 차별받는 걸까요? 그리고 그 기준과 분류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인간으로서 존중해줄 수 있을까요?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이 일치하는 이들이 ‘정상’이라면 <씨씨에게 자유를!>의 씨씨는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비정상’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길거리를 걸어 다닐 때 종종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자주 혐오범죄에 노출됩니다. 한편 비장애인이 ‘정상’이라면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후쿠시마 장애인들은 ‘비정상’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설과 대책의 부족으로, 혹은 타인에게 민폐가 될까봐, 재난지역에서 피난하지 못한 채 남아있습니다.
<그림3. 케이크와 귤을 먹으면서 세미나 중인 활동가들>
활동가들은 영화에서 확장해나가 스스로 정상성으로부터 배제된 경험 혹은 목격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놀랍게도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수많은 경험들을 털어놓았습니다. 모두 동일하진 않지만 다양한 이유로, 너무 익숙한 차별과 배제를 겪어보았던 것이죠. 그렇다면 이 경험들을 겪은 이유는 우리가 정말 특이하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끝없는 정상의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며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배제하고 누군가는 포용하는 정상/비정상의 기준은 참으로 허구적이며, 빈번히 우리를 틀린 존재라고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맞출 수 없는 정상성에서, 언제나 비정상일 수 있는 존재일 것입니다. 인권영화제를 통해 앞으로 우리는 여러 삶의 경험들과 타인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지만, ‘틀린’ 사람들은 아니겠지요. 서로를 정상과 비정상의 틀에 가두어 분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준다면, 우리는 오롯이 존재할 수 있고 서로를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세 번째 세미나 소식을 마치려고 합니다. 벌써 반이나 달려온 서울인권영화제의 세미나! 앞으로도 활동가들의 깊은 고민과 풍성한 논의들이 오갈 것을 생각하니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