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문제를 마주하는건 답답하고 들끓는 일이야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9/11/06
[그림1: 포스트잇이 놓여있다. 포스트잇에는 인권 관련 소식 나누기, 학력에 따른 위계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내용, 나이와 관련된 사회적 관습에서 자유롭기, 경험의 차이로 위압감을 조성하는것을 지양하자는 내용이 적혀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세미나! 두 번째 시간입니다 :) 지난 첫 모임때 반성폭력/반폭력 세미나를 꼼꼼히 진행하다보니 시간이 늦어져서 우리들의 약속은 이번 모임에서 진행했습니다. 세 번에 걸쳐서 각각의 자원활동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곳에서만큼은 꼭 지켜졌으면 하는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답니다.
[그림2: 유리문에 자원활동가들이 적은 60여 개의 포스트잇이 부착되어있다. 포스트잇에는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을 하며 지켰으면 하는 약속들이 적혀 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대화는 짧고 심도있게! 이루어졌는데요. 조를 바꿔가며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니 한마디도 해보지 않았던 자원활동가들과 말문을 틀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서로에게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게 된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얻어가게 된 것 같습니다. 사무실 벽면에 붙여질 우리들의 약속! 초반의 어색함이 사라지고 한층 더 친해지더라도 잘 지켜질 수 있게끔 눈여겨보자는 다짐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
짧은 휴식시간 후 이어진 "프로그래밍의 이해" 시간은 영화제 기획 시 사용되는 용어, 앞으로 진행할 프로그래밍의 의미에 대해 공유받는 시간이었어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레고님이 정리해주었답니다.
먼저 영화제의 섹션제목을 통해 영화제를 유추해볼 수 있게끔 작은 퀴즈가 나왔는데요. 각 영화제의 섹션제목은, 찬찬히 읽어보면 영화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영화제의 섹션을 구성하고, 각 섹션별로 묶여진 영화들의 프로그램(관객과의 대화, 광장에서 말하다)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프로그래밍이라고 하고, 프로그래밍을 하고 작품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하는 사람을 프로그래머라고 합니다. 프로그래머의 역량이 곧 영화제의 역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하고, 우리 영화제는 인권이슈를 다루는 만큼 인권 전반에 대한 역량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조금은.. 부담됐지만 9회차에 걸쳐 세미나를 하다 보면 가능하다고 하니 이 부분은 전적으로 믿고 맡기며~ 숙제를 꼼꼼히 해나가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이밖에도 영화제에서 상영할 영화를 선정하는 여러 방식, 제작지원에 대한 개념, 서울인권영화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여 BDS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 영화제에서 상영할 영화 중 주제의식이 명확하지만 표현방식이 인권의 가치와 맞지 않을 경우 상영작에서 제외된다는 점 등을 공유받으며 서울인권영화제의 영화선정에 대한 개괄을 알아가며, 슬로건 선정에 대한 정보도 공유받고, 이전에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진행된 섹션을 꼼꼼히 살펴보며 서울인권영화제가 담고싶어하는 가치를 어렴풋이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림3.자원활동가 다희님이 인권세미나 “맞서다 : 마주하다, 저항하다-저항과 투쟁, 투쟁과 연대” 를 진행하고 있다. 10여 명이 넘는 자원활동가들은 다희님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
칼같이 시간을 맞춰준 레고님 덕분에 숨을 돌리고, 대망의 첫 인권세미나-! "맞서다: 마주하다, 저항하다 - 저항과 투쟁, 투쟁과 연대"는 자원활동가 다희님의 진행으로 시작됐어요! (환호)
자원활동가들은 <예외상태>를 보며 40년간 자신의 집을 지었는데 굴삭기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지켜본 선주민이 자신의 삶이 무너진다고 참담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장면과 여러번 강제퇴거경험을 겪은 선주민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는데요. 이를 통해 활동가들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은 단순한 생활공간을 아니라 문화, 생활양식이 깃들어있을수 밖에 없으며 정부의 행태는 공간에 대한 침해를 넘어서, 일상과 생존을 위협하기에 사람들은 저항을 하고 있고, 또 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올림픽, 월드컵이라는 이벤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선주민들이 예외상태에 놓이게 된 상황에 대해 나눠주었는데요.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에서, 88올림픽 당시 성화봉송 장면이 방송에 나올 때 상계동의 판자촌이 화면에 걸리게 됐고, 이후 강제퇴거, 철거가 이뤄져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던 사람들은 쫓겨나 근처 다리 아래에 자리잡았지만, 그곳도 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로 또 다시 강제이주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전쟁의 역사로 인해 '빨갱이'라는 낙인, '종북몰이'를 통해 발언권을 삭제하는 방식, 적-아군을 구분하는 시도한다는 점에서 늘 예외상태에 놓이는 사람/상황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을 '예외상태'로 존재하게끔 구획 하고 구성하는 힘, 관계는 무엇일지 고민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브라질 아마존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요. 현재 아마존의 화재피해가 심각한 상황인데, 정부는 도리어 타버린 아마존을 없애고 수출용 콩밭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소수부족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자신의 문화, 삶의 조건을 보호받지 못한 채 퇴거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와같은 상황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벌어진 일과 닿아있는데요. 수조원의 자원낭비, 50가구가 1년동안 폐교로 강제이주 되는 상황을 통해 끊임없이 '예외상태'라는 '합법'의 이름으로 배제되는 선주민들과 삭제되는 공간의 역사는 얼마나 무수할지 가늠조차 안되고, 계속해서 같은 결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반복되는 것을 보아 저항의 이유는 충분한것 같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에서는 브라질의 정치인들이 기독교를 앞세워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배척하고, 낙인과 혐오를 정치의 구호로 삼고있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요. 이를 본 자원활동가들은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대체로 이 답답한 마음을 해소시켜주는 시위 장면을 인상깊게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누가 잔디라를 죽였는가’ 라는 질문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던지고,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거리에 나와 연대하고, 강력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혐오에 대항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저항하는 이유일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두 영화 모두 다큐멘터리 영화고, 이 방식 자체가 저항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는데요. 다큐멘터리 영화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사진보다 긴 호흡으로 남겨 놓는 표현방식이기에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사람들은 힘듬을 마주할 수 밖에 없고, 이런 힘듦을 마주하게 하는 것-마주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저항일 수 있다고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항의 이유를 살피다보면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요. 예를들면 <예외상태>에서 ‘우리에게는 공교육과 공공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에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성소수자 정치인의 연대를 통해 무엇이 이들을 연대하게 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져갔습니다.
[그림4: 자원활동가들이 인권세미나 참여 전 미리 보고 온 영화 <예외상태>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를 바탕으로, 다희님이 주신 질문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며 토론하고 있다.]
이어서 두 영화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저항하는지, 누가 어떻게 연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예외상태>에서 철거-강제퇴거 반대하는 활동가가 마을 군데군데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찾아가 자신도 철거-강제퇴거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점을 보고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여성들이 10번출구 앞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말을 보태며 '이 일은 나의 일 일수도 있다'는 공감과 위기의식을 느꼈기에 서로의 경험을 공유 할 수 있었고, 영화에서 본 저항과 연대도 이와 연결된다고 환기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외상태>에서 선주민들의 의상, 행위들이 부족의 삶을 보여주기에 철거-강제퇴거는 거주공간만을 뺏어가는 것을 넘어서 삶을 통채로 박탈하는 것, 이를 자신들이 가진 수단을 사용해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점을 공유해주었어요.
그리고 두 영화 모두 투쟁방식은 한가지로 정해져있지 않았다는 점을 짚으며, <예외상태>에서 여러 사정으로 인해 철거투쟁 중 공공주택 입주를 선택한 사람에게 함께 투쟁하던 사람들이 '배신자'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고 외부에서 '한 가지 투쟁방식이 옳다'와 같은 이분법적인 구도로 평가하기 어렵다는점을 길어올렸고,삶을 포기하지 않고 생존하는것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 그가 주는 울림, 힘이 있을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 중 의회에서 기독교중심주의 의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가운데 성소수자인 의원이 반대의견을 말하는 장면까지 함께 엮어봤을 때, 각자의 위치-집단에서 저항하고 연대하고 있음에 더 방점을 두었으면 한다는 이야기 까지 나눠주었습니다. 또, 정치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만 거리던, 의회던 저항하는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은 정치의 필요성까지도요!
마지막으로 연대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요. 연대는 어떤 집단이 하나로 뭉치게끔 만드는 상대가 존재할텐데, 그 상대가 구체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일상 자체가 투쟁이 될 수 있는 등 상황에 따라 구성될테지만 결국엔 무엇이 투쟁해야 할 대상인지, 연대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연대 과정에서 한 진영이 다른 진영을 '챙긴다'고 표현될 때 생기는 위계와 경계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눠주었습니다.
영화지만, 실제로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감내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하고, 계속해서 저항하게 만드는 문제들은 또 터져나오고, 해소되지 않은 채 지난한 시간안에서 들끓음의 정도는 커져갔던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거리에서는 시위로, 의회에서는 발언으로, 주거공간에 무장한채 쳐들어온 공권력과 거리로 내모는 자본에 대항하는 사람들과 그들 옆에서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마음에 콕콕 박혔달까요. 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지만 문제에 충분히 감응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연대하고, 이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퍼져나가게끔 만들어 타인에게 답답하고 들끓음이 가득한 현실의 문제들을 마주하게끔 만들었던것 같아요. 이러한 연결고리를 느끼고 되짚으며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은 뇌리에 깊게 박히는것 같습니다. 다음세미나는 <혐오에 저항하다-교차성 톺아보기/씨씨에게 자유를!> 입니다. 영화를 봤기에, 또 다시 답답함의 세계로 빠졌지만, 세미나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할 시간을 기다리며 그때까지 잘- 되는만큼 정리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안녕-!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