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천릿길을 걸어 외치다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걸음 더”

[활동펼치기] 천릿길을 걸어 외치다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걸음 더”

다들 기억하실까요. 지난해 3월,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던 시기, 17세 정유엽님은 40도가 넘는 고열에도 코로나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당하다가 결국 급성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13번이나 반복된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습니다.

 

지난 3월 18일은 정유엽님의 사망 1주기였습니다. 유가족을 비롯한 코로나19 의료공백으로 인한 정유엽 사망대책위원회는 2월 22일 경산중앙병원에서 출발하여 3월 18일 청와대까지 도보로 행진했습니다. 행진의 이름은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걸음 더”였습니다. 정유엽님의 죽음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의료공백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그래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는 행진이었습니다.

 

저는 코로나19 의료공백실태조사단과 함께 17일과 18일 행진에 함께했습니다. 다행히도 날이 맑고, 밝고, 따뜻했습니다. 코로나19를 말미암아 집회가 자유롭지 못한 지금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과 거리를 함께 걷고 함께 외칠 수 있었습니다. 여의도를 지날 땐 엘지트윈타워 투쟁현장 노동자들의 지지와 응원의 박수를 받으며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포근한 봄날씨에 겉옷을 벗고 걷다가, 지칠 때 즈음엔 함께 김밥 한두 줄을 먹으며 남은 거리를 가늠해보기도 했습니다. 경산에서 청와대까지는 370km, 거의 천릿길이라고 하네요. 경산에서부터 서울까지 어떤 마음으로 걸어왔을지 가늠해보는 제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제2의 정유엽’이 나와서는 안 된다며 투병 중인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꾹꾹 눌러 걸어온 정유엽님 아버지의 마음을 차마 다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모두들 무사히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마치고 기자회견과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래도 다행이다 스스로 다독였습니다.

 
[사진1. 청와대 분수대 앞. 고 정유엽 학생 사망 1년 추모 기자회견 “정부는 의료공백 문제 책임있게 조사하고 재발방지 위해 공공의료 강화하라”의 모습. 발언자들이 기자회견의 제목이 적힌 현수막을 뒤에서 국화, 피켓, 병원 모형을 들고 있다.]
[사진1. 청와대 분수대 앞. 고 정유엽 학생 사망 1년 추모 기자회견 “정부는 의료공백 문제 책임있게 조사하고 재발방지 위해 공공의료 강화하라”의 모습. 발언자들이 기자회견의 제목이 적힌 현수막을 뒤에서 국화, 피켓, 병원 모형을 들고 있다.]
 

아프면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치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유엽님의 죽음을 미처 제대로 애도할 새도 없이, 그리고 이 죽음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이, 의료공백의 피해는 여기저기서 나오는 채로 1년이 흘렀습니다. 동자동 사랑방 주민 A씨는 다리 염증으로 119 구급차에 이송되었지만 고열로 인해 응급실 세 곳에서 진료 거부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C씨는 일터에서 사고로 엄지손가락이 절단되었지만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여러 병원의 진료 거부가 있었고 14시간 만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HIV감염인 E씨는 만성중이염으로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평소 이용하던 국립의료원이 코로나19 전담 병원이 되면서 수술이 연기되고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여러 시설에서는 코호트 격리 조치로 인해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거주인들이 있었습니다. 

 

길어지는 코로나19 상황에 국가는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조금만 참자고 말합니다. 참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결국 사회적 소수자가, 약자가, 취약계층이, 아파도 참아가며 이 위기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의료공백은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고, 아픈 사람들이 의료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끔 하고, 의료기관들 간의 연계를 정확히 했다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지 않았을까요?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치료 받고 살아갈 수 있는 국가를 왜 만들지 않는 것일까요.

 

의료의 공백은 안전의 공백이고 인권의 공백입니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습니다. 코로나19는 엉망이 되어버린 위기 상황을 드러낸 데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바이러스 종식만을 외치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외선카메라는 열심히 곳곳을 비추는데, 존엄하고 평등한 삶을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코로나19라는 렌즈를 통해 드러난 것은 오히려 혐오와 낙인, 차별과 배제입니다. K-방역의 신화는 의료인들을 갈아넣어 코앞의 위기를 막은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의료시설 종사자 중 일부를 ‘예비명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백신 접종에서 배제하며 차별하였지요.

 

[사진2. 하얀 국화 한 송이 뒤로 경복궁역 근처의 길을 걷고 있는 행진 대열이 흐릿하게 보인다.]

[사진2. 하얀 국화 한 송이 뒤로 경복궁역 근처의 길을 걷고 있는 행진 대열이 흐릿하게 보인다.]

코로나19 사망자 숫자 옆에 증가, 감소 표시를 붙이는 것으로 위기의 극복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충분히 애도하고, 위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의 경험을 위로하며, 이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부는 계속되는 의료공백을 책임지고,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여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늦었지만 더 이상 늦을 순 없습니다. 천릿길 행진에 담긴 한 걸음 한 걸음을 새기며 존엄하고 평등한 삶이 가능한 사회를 다시 그려봅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