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 6호(전체 100호)] 울림 100호 더 큰 울림으로 다가가겠습니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0/05/13
울림 100호 특집 기획의 변
울림 100호 더 큰 울림으로 다가가겠습니다
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이 이번 호로 100호를 맞이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100호를 맞이하니 왠지 한 고비를 넘긴 것 같기도 하고, 지나온 날을 정리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영화제 소식을 전하느라 한창 바쁜 5월이지만 울림 100호를 기념하기 위해 야.심.차.게. 특집호를 기획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울림을 만들었던, 또 지금 만들고 있는 활동가들이 울림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립니다. 평소 울림을 읽을 때보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100호 특집을 읽으면서 축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늘 인권영화제와 함께 울림에도 지지와 성원 보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울림의 탄생
'울림'이 '울림'인 이유는?
울림은 언제 태어났을까요? 2001년 4월 18일에 울림 1호가 처음 발송되었습니다. 2001년은 가을에서 봄으로 개최 시기를 옮기면서 '다시 보는 명작선'이라는 제목으로 5.5회 인권영화제를 열었던 해입니다. 인권영화제 가 변화하는 시점에 맞추어 뉴스레터 울림도 새롭게 시작되었네요. 이후 울림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발송 주기를 달리 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면서 영화제 소식, 상영작 소개, 감독 인터뷰 등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100 호째 이어지고 있는 울림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자원활동가들이 직접 만드는 뉴스레터라는 점입니다. 보통 자원활동가 3~5명이 울림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더 많은 활동가들이 울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년간 수많은 자원 활동가들이 울림과 함께 했고 그들이 없었다면 울림도 없었겠죠. 끝으로 초창기 울림에 실렸던 '울림이 울림인 이유'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네요.
우리 주변에는 슬프고 아픈 사연이 많습니다.
그래서 '울림'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합리함에 맞서 투쟁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영화 소식을 전합니다.
또한 우리의 영화들이 담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울림'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의 작지만 소중한 움직임들이 우리에게 울려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울림'입니다.
예전 울림 코디 '마토' 인터뷰
울림이 인권영화제와 관객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길
(*자원활동가 마토 씨는 울림팀 코디로 활동했었고,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활동을 잠시 쉬고 있습니다. 현재 울림팀 자원활동가 지용이 예전 울림팀 자원활동가 마토를 인터뷰했습니다.)
활동명 '마토'는 어떤 의미인가요?
실제로 들어보면 별거 아니라서 실망할지도 몰라요. 토마토에서 '토'를 뺀 것이에요. 토마토의 싱그러운 느낌이 좋아요. 단지 먹는 음식 그 이상으로 좋아합니다. 6년 전쯤 학교에서 여 성주의 공부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첫 만남에서 애칭을 정해보자고 해서 즉흥적으로 떠올린 것이에요. 토마토에서 '토'를 성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마토'라고 하자고 생각했는데, 이게 정말 만족스러워서 아직까지도 활동명으로 쓰고 있어요. 여은이라고 같이 자원활동을 했던 친구가 있는데 제 활동명이 너무 좋다면서, 본인은 아직도 '마토' 정도의 활동명을 찾지 못해서 본명을 쓴다는 이야기를 해요.
울림은 마토에 게 어떤 의미인가요? 혼자 울림을 맡아서 했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2004년도부터 인권영화제 활동을 시작해서 2004,05,06,08년 인권영화제에 참여했어요. 영화제 전후로 반딧불 활동을 하고, 사랑방 다른 팀에서 '인권오름'의 전신인 '인권하루소식'의 기자도 2달 정도 하였고요. 2004, 2005년에는 홍보팀, 국내 프로그램팀 활동을 하였고, 2006년도에는 상임활동가 한 분이 그만두시면서 자원활동가들이 팀별로 나뉘어져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는 그 상임활동가 언니가 모든 활동을 도맡아 하는 식이었다면, 자원활동가들이 팀에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방식으로 바뀐 거죠. 이때 울림팀을 맡게 된 거예요. 제가 이를테면 편집장이었고 자원활동가 5~6명이서 같이 울림팀을 한 거죠. 영화제 전에 6,7호 정도를 발송했고,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데일리(Daily)라고 해서 매일 발행되는 뉴스레터를 했고요. 1년 동안은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한국에 인권영화제가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 마음 붙일 데가 있 다는 게. 사람들이 저를 환영해주고, 저를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있는 곳. 그래서 2008년도에 다시 울림팀을 맡아서 저에게 있어 네 번째 인권영화제를 하게 된 거죠. 혼자서 한 적은 없어요. 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편집회의를 하고 기사기획을 한 뒤 각자 흩어져서 일주일동안 취재를 하잖아요. 지금 지용이 저한테 온 것처럼. 기사를 작성하고 취합해서 편집회의 때 기사를 다 함께 돌 려 읽어보고 그날 밤에 HTML 웹 작업을 한 뒤 발송을 하는 거죠. 제가 홈페이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도 잘 못하는데, HTML 이게 완전 외계어인 거예요. 자원활동가 분 중에서 '나모 웹에디터'라는 프로그램을 다루 시는 분이 계셨는데 제가 한글파일로 작업해서 보내면 그 분이 다시 작업해서 보내고, 그러면 다시 수정해서 보내고 그랬어요. 메일 계정에 따라서 깨져서 보이거나 하는 부분이 있어서 다시 수정하는데 그게 가장 힘든 부 분이었어요.
울림 꼭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꼭지 또는 있었으면 하는 꼭지는 무엇인가요?
감독 인터뷰가 울림에서만 볼 수 있는 아이템인 것 같아요. 요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 보 기 전이나 후에 그 영화에 대해 찾아보고 싶어 하잖아요. 감독 인터뷰는 감독이 직접 코멘트를 한 것들이 담겨있고, 인터뷰를 통해서 촬영 뒷이야기나 에피소드들도 알 수 있죠.
생겼으면 하는 꼭지는 없어요. 저에게서 아이템을 얻어 가려는 것 같은데.(웃음) 좋은 것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기억에 남는 울림 기사는요?
10회 인권영화제 때, 종합문화행사처럼 부 대행사들이 많았어요. 콘서트나 극장 로비에서 하는 작은 전시회도 있었고, 당시 영화제 주제가 '남아시아 민중의 인권'이어서 캄보디아 소수민족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 가방 같은 것도 팔았어요. 그래서 부대행사들을 미 리 예고하는 기사가 있었고요. 또 그때 국내작들에서 사용된 음악들이 좋았어요. 배경음악들이 영화의 내용과 분위기에 맞아 떨어졌던 것 같고, 감독님들도 신경 써서 음악을 고르신 것 같고요. 그래서 정확한 꼭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음악 관련 기사가 있었어요. '살바'라고 포스터를 직접 그린 자원활동가가 있었는데 '포스터 이야기'라고 포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요즘 울림을 보시나요? 보 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울림팀 뿐만 아니라 영화제 팀 전체가 자원활동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활동할 때는 좀 혼자 몰래 즐기는 분위기였어요.(웃음) 좀 더 조용하고.
영화제 활동하면서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영화제를 무사히 끝내고 나면 하나의 행사를 잘 치러냈다는 성취감이 커요. 기준점이 된 행사를 끝내고 나면 뿌듯하고요. 아쉬 운 점은 영화제 이외의 다른 단체나 다른 활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많이 접할 수 없다는 것이죠.
활동가들이 꼭 해봤으면 하는 게 있다면?
바로 앞 질문과 맥락이 닿는데요. 다른 단체 활동에도 가보고 적극적으로 참여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라고 하면 많이 반가워하시거든요. 그런 기회를 스스로 찾아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기삿거리도 생기고요.
기억에 남는 상영작은 무엇인가요?
사랑방에 있는 것 같은데, 라고 한번 찾아서 보세요. 일생동안 건설노동자 일을 하신 감독님 아버지가 주인공이에 요. 아버지는 일을 안 나가시고 밀린 월급 때문에 어머니가 짜증을 내시는 등 가족 문제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 문제가 있는 불법 하도급 문제 같은 건설 쪽 인권현안들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어요. 노 가다라는 단어의 어원도 찾아보고, 일본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어떻게 연대해서 활동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고요. 당시 학교에서 학회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서 같이 학교 강의실에서 친구들과 같이 보기도 하 고 그랬어요.
같이 했던 활동가 중 누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10회 때 마지막 상영일에 평택 대추리에서 야외 상영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셨어요. "정말? 여기서 한다는 거야?" 당시 주민들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대추리가 고립되어 있고 인권활동가들 중에서 지킴이라고 하는 분들만 거기서 주민처럼 살고 있는 상황이었고, 대추리 주변에서 집회나 미군기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들이 전혀 불가능했었는데요. 그 전날 영화 상영 장비들을 몰래 가지고 들어가서 나무에다가 스크린을 걸고요. 저는 당일 날 대추리 마을입구에 갔는데 거기서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었어요. 결국엔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영화제 상영 임박해서 가라고 열어주더라고요. 그 때 지희라고 같이 있던 자원활동가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같은 울림팀이었는데 글이 범상치가 않았어요. 제게 메일로 안부 편지를 보낼 때도 시적인 표현들, 갈고 닦은 언어 들로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 친구가 나중엔 신춘문예 문학평론에서 상을 받았어요. 울림이 낳은 인재가 아닌가.(웃음)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로스쿨 과정이 3년인데, 지금 제가 2 학년이에요. 제가 하는 공부의 특성상 초반에 상당량의 주입식 암기가 필요해서인지 극단적인 수도자 생활이 필요한 것 같아요.(웃음) 교수님들도 "쳇바퀴 돌 듯 살도록 하십시오."라는 말을 덕담처럼 해주고 있어요. 작 년에는 많이 적응이 안 되었어요. 일례를 들자면, 사랑방에서 박래군한테 하는 것처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자 동기 분께 편하게 얘기했다가 다른 분들이 발끈해서 술자리 분위기가 나빠진 일이 있어요. 제가 좀 그릇이 안 되었나 봐요. 제 스스로의 기준에선 그럴 수도 있었다고 담대해져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지고....... 뭐, 공부는 잘 되어요. (책 읽듯이)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터득하고 있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언제 돌아오실 건가요?
2010년, 2011년, 졸업을 하기 전에는 계속 관객일 것이고요. 그 이후에 직업을 구하고 나서는 자원활동가든 돋움활동가든 어떤 형태로든 영화제에는 계속 한 발을 담그고 있을 것 같아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고, 이건 좀 무책임한 말인가(웃음), 당연히 거기에 서있는 제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은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울림이 드디어 100 호를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축하와 지지메시지 부탁드려요.
울림을 하고 나서부터는 다른 영화제에 가게 되면 다른 무엇보다도 뉴스레터를 먼저 찾아보게 되어요, 아무리 구석진 곳에 있다 하더라도. 흑백으 로 된 작은 인쇄물 하나라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요. 그렇게 저처럼 뉴스레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권영화제 관객들이 분명히 아주 많을 테니까 계속해서 인권영화제와 관객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어!울림
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 대공개!
* 시각장애인을 위한 해설입니다.
특집 어! 울림
여섯 번째 이야기
1. 회의
울림은 울림팀의 구성원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발상으로 더 나은 기사를 만드려는 울림팀의 의지! 뿐만 아니라 발송 일정, 업무 분담 등을 포함한 여러가지 기획들을 고민하는 시간이랍니다. 절찬리에 연재 중인 와 어!울림도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죠.
"자, 이번 울림은 어떻게 만들까요?"
"일단 간식부터 먹고 시작하는 게..."
2. 원고 청탁
기획이 완성되면 울림에 글을 실어줄 필자들을 섭외합니다. 하나의 주제 아래 다양한 개성을 담고자, 함께 활동하는 자원활동가들에게 원고를 청탁하지요.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흔쾌히(?) 허락을 해주시지만 유독 자 신은 글을 못 쓴다며 손사래를 치는 활동가도 있답니다. 괜찮아요~ 중요한 건 실력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나가는 그 자체이니까!
"저, 저기, 원고 좀..."
"응?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글쎄?"
3. 편집 & 교정
활동가들의 글이 모아지고, 영화제 소식을 담은 원고가 도착하면 사랑방 사무실에서 편집을 합니다. 기본적인 틀 아래 글을 담고, 그림들을 모아 발송 준비를 하는 것이죠. 이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오탈자와 비문을 위해 전체적인 교정,교열에 착수합니다.
"아이 참, 누가 이렇게 많이 틀린 거야!(버럭)"
"엇, 그거 본인이 쓰셨던 거 아니었나요?"
4. 발송
모든 준비가 끝나고, 발송만이 남았네요. 인권영화제 메일링에 가입하신 분들에게 정성을 다해 완성한 울림을 보내드리는 과정입니다. 컴퓨터에 저장된 울림 발송틀을 이용해 발송본을 완성한 후 진보넷의 시스템을 통해 독자분들에게 전달을 합니다. 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 어떻게 보셨나요?
"감동의 순간이에요!"
만든 이: 재영
100호를 맞은 울림에 앞으로도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
울림 100호 축시
울림의 각오
장애인 접근권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울림을 받아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디자인도 좀 투박하고 글자만 꽉꽉 들어차 있다는 인상을 받으실 것 같아요. 기사가 길어지면 '스크롤의 압박'에 놀라신 적도 있을 것 같네요. 울림팀에서는 좀 더 보기 좋은 소식지를 만들어보려고 네 컷 만화 '어! 울림' 같은 시도들을 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보기 좋은' 그림이 오히려 전혀 볼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14회 인권영화제 울림 3호'부터는 '어! 울림' 아래쪽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 해설이 같이 실리고 있는데 눈치 채셨나요? 완벽하지는 못해도 인권영화제가 늘 장애인 접근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듯이, 울림도 장애인 접근권에 대해 좀 더 고민했어야 했는 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네요. 사진이나 그림 해설부터 시작해서 앞으로도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독자의견 및 울림 지지메시지를 기다립니다
울림 독자 여러분, 이번 울림은 어땠나요? 울림 100호를 맞이하여 깜짝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울림 100호를 읽고 독자의견이나 울림을 향한 지지메시지를 보내주시는 분들 중 세 분을 선정하여 인권영화제 역대 상영작 DVD 1편을 보내드립니다! 주옥같은 인권영화제 상영작 DVD는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의견 및 지지의 글 기다리고 있을게요~
인권영화제 블로그입니다 http://blog.naver.com/hrfilms/
울림팀 활동가들의 지지메시지
흐어엉 드디어 울림이 100호가 되었네요. 감동의 쓰나미가ㅜㅠ 정말 열심히 달려온 우리 울림 칭찬해주자구요. 완전 예뻐~♡ -지용
울림 100호의 발행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인권영화제와 함께 힘차게 나아가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울림 사랑해요~ ♥ -소라
제가 인권영화제 자원활동을 지금까지 쭉 이어가도록 만들어준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울림입니다. 100호 중에서 저와 함께한 울림 호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왠지 처음부터 함께 했던 느낌이네요. 애정이 많은 만큼 부족한 점이 눈에 많이 띄지만 앞으로 조금씩 보완해나가면 되겠죠?!ㅋㅋ -민지
와 100호 특집이라니! 아직 울림팀 새내기이지만 인권영화제를 늘 알리고 영화제와 함께한 울림이 너무 멋져보이네요. 더 많이 소통하는 창이 되는 울림이 되길 바래요. -주은
울림 100호를 한 달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했는데 드디어 발송되네요!! 어떻게 나올지 두근두근~ 울림 1000000호가 나올 때까지 더욱 전진합시다~ -정윤
영화제의 다양한 소식들을 전하기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하는 울림!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ㅎㅎ 울림 화이팅~~ -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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