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장 어머니들Las Madres-The Mothers of the Plaza de Mayo

5월 광장 어머니들Las Madres-The Mothers of the Plaza de Mayo

5월 광장 어머니들Las Madres-The Mothers of the Plaza de Mayo의 스틸사진
감독
수사나 무노즈, 로드레스 포르틸로
상영시간
64'
제작국가
아르헨티나,미국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85
색채
color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시놉시스

감독,제작,대본:수사나 무노즈, 로드레스 포르틸로촬영:미셀 앤더슨사운드:클레어 스케온 18세기의 후고 헥토르는 빈민촌의 탁아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개혁이 불평등을 없애주기를 기대했다. 31세 릴리아나는 아르헨티나의 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였다. 그는 쿠데타 이후 이 나라에서 횡행하는 납치와 고문과 죽음에 대해 조사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사라졌다. 15세 마르틴이, 임신 5개월 된 젊은 딸이,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한 지 얼마 안 된 16세 소년과 그의 아버지가 사라졌다. 비델라 군사독재 아래서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3만여 명.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당국의 문을 두드렸고, 언론과 카톨릭 교회와 유대교의 라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절망한 어머니들은 발길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 앞의 '5월 광장'으로 흘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이 벤치, 저 벤치에 떨어져 울던 어머니들이 서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를 잃었지요?" 부패한 국가 폭력에 대항해 정의를 요구하는 '5월 광장 어머니들'의 역사는 1977년 4월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사나 무노즈와 로드레스 포르틸로의 은 그 어머니들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현대사로 파고드는 다큐멘터리이다. 무노즈와 포르틸로는 어머니들과 관료와 전직 군인들의 증언을 통해 국가의 불의가 자행되고 묵인되어온 과정을 침착하게 해부해간다. 학살의 주모자들은 파나마 군사학교에서 미국의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비행하다 반체제인사들을 바닷속에 수장하던 조종사들과 희생자의 등을 밀던 이들도 있었다.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사면할 것인가? 침묵으로 폭력을 방조하던 교회는? 역사 속에는 '선량한 시민'들도 있다. "내 아이를 돌려달라"고 행진하다 경찰에 끌려가던 어머니들에게 월드컵 개최국 아르헨티나를 뒤덮던 축구 팬들의 환호는 얼마나 낯설었던가. 은 그 모든 과거를 망각 속으로 묻어버리는 것을 거부한다. 민간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목요일이면 5월 광장에 모여 어머니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우리 나라 탑골 공원에도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보랏빛 수건을 두른 민가협 어머니들이 모이고 있다. 그러한 어머니들은 아르헨티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감독소개

수사나 무노즈, 로드레스 포르틸로

수사나 무노즈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두 편의 단편영화 <Susana> <Argentina>를 만들었다. <Las Madres - The Mothers of The Plasa de Mayo>는 9년 동안 감독활동을 한 그녀의 첫 장편영화이다.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드레스 포르틸로는 <Pocho and Chola>의 시나리오를 썼고 <After the Earthquake>에서는 시나리오, 연출, 제작을 담당했다.

인권해설

1976년 민간 정부인 이사벨 페론 정권을 축출하고 호르헤 비델라가 집권한 후 1979년까지 좌익 척결을 명목으로 군사 정부가 벌인 '추악한 전쟁' 당시 실종된 재야 인사와 학생, 정치인, 외국인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공식 발표로는 9천여 명, 인권 단체의 비공식 집계로는 3만여 명에 달한다.

군부가 자행한 이 '추악한 전쟁'에 대해 1983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라울 알폰신 정부는 군정 지도자들을 전원 기소했다. 그는 자신의 공약대로 군정 청산에 착수해 비델라를 비롯한 군정시절 대통령 3명과 당시 각군 수뇌부로 구성된 군사평의회 지도자 9명을 불법 감금과 납치, 고문 등 인권 유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특히 비델라 전 대통령에게는 살인 혐의가 추가됐다. 1985년 12월까지 3년간 진행된 재판에서 비델라 전 대통령과 마세라 전 해군참모총장에게는 무기징역, 비올라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이 선고되는 등 370여 명의 군정 관계자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알폰신에 이어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쿠데타 기도가 이어지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자 1990년 12월 '추악한 과거를 잊자'며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군정 관계자 전원에게 사면조처를 내림으로써 과거 청산의 기치는 꺾이는 듯했다. 하지만 1998년 6월 9일, 비델라 집권 기간에 5명의 어린이가 납치당했다는 한 어머니의 기소 내용을 연방 법원이 받아들여 비델라를 아동약취 등의 혐의로 체포함으로써 군부 독재의 인권 유린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는 5월 광장 어머니회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군정 아래 실종된 이들 중 대다수의 행방이 아직도 묘연하고 인권을 유린한 자들이 국민 화합이라는 이름 아래 사면을 받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요 집회가 계속된다는 건 아르헨티나에 아직도 불의가 남아 있음을 뜻한다."는 말처럼 실업과 빈곤이 날로 가중되는 상황에서 실종자들의 자녀 등 젊은 층의 주도로 사회 보장 운동을 자신의 사업으로 껴안기 시작한 5월 광장 어머니회의 목요 집회는 계속해서 아르헨티나 사회 정의 실현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아르헨티나 민주화의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서영/인권운동사랑방 자원봉사자>

스틸컷

5월 광장 어머니들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