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민중La Nacion Clandestina

지하의 민중La Nacion Clandestina

지하의 민중La Nacion Clandestina의 스틸사진
감독
보르헤 산히네스
상영시간
125'
제작국가
볼리비아
장르
극영화
출시년도 1989
색채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시놉시스

보르헤 산히네스가 각본을 쓰고 감독하고 우카마우 집단이 제작한 볼리비아 영화 '지하의 민중', 본디 이름은 '비밀의 나라(La Nacion clandestina)'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탐험 영화도, 지하 영화도 아니다. 할리우드의 인디아나 존스도 유럽의 언더그라운드도 아니다. 전자처럼 황당하지도, 후자처럼 어렵지도 않다. 있는 그대로 아주 쉽고 시원하게 보여준다. 세트도, 스타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대한 산정에서 광막한 도시나 황야를 바라본다. 네루다가 노래한 대산맥의 남미 중에서도 볼리비아는 드높은 내륙국이다. 주변의 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보다는 훨씬 작으나 그래도 한반도의 다섯배 크기이다. 그러나 인구는 우리가 다섯 배나 많다. 그래도 그 서울인 라파스는 복작거린다. 물론 4천 미터 고지 판자촌에 사는 대다수 원주민보다 4백 미터 아래에 사는 소수의 백인은 그럴듯한 집에서 산소를 많이 마실 수 있다. 그 판자촌에서 4년째 널을 짜며 가난하게 살던 세바스찬은 귀향을 서두른다. 그러나 그것은 금의환향이 아니다. 그는 죽음의 춤을 추기 위한 거대한 가면을 지고 힘겹게 떠난다. 그 전날 쿠데타가 터져 사람들이 죽어가고 울부짖어도 그는 무관심하게 발걸음만 재촉한다. 그러나 그의 고향에서는 쿠데타에 저항하기 이해 광부들과 연대하고자 농민들이 모두 광산으로 떠나간다. 황야를 지나면서 그는 아픈 과거를 되씹는다. 백인들의 화려한 무도회에 참가했던 젊은 날, 그는 원주민인 것이 부끄러워 이름을 백인 식으로 바꾸고 군인으로 출세한다. 이어 내무베에 취직하여 인권운동가들을 탄압하고 살해하기도 한다. 그후 도시에서 술에 절여 살다가 고향에 돌아가 결혼도 하고 촌장으로 선출되나 미국 원조 물자를 횡령한다. 쿠데타가 발생하여 노동 조합이 도로 봉쇄를 요청하나 원조 물자 때문에 묵살한다. 그런 배신으로 그는 마침내 마을에서 추방당한다. 추방당한 자가 돌아오면 돌팔매질에 맞아 죽는 것이 그 마을의 관습이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마을을 떠난 어린 시절에 보았던 죽음의 춤을 추며 스스로 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침내 고향에 돌아오나 마을은 텅 비었다. 그는 노인들에게 사정하여 고통스러운 죽음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수많은 시체를 이끌고 돌아온다. 오열하는 민중들은 어울리지 않게 춤을 추는 그를 비난하며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영화는 남미의 오늘을 사는 민중의 두 가지 삶을 대비한다. 아니 그것은 역사를 조명한다. 옛날에는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으나 16세기 이후 남미는 서양의 식민지가 되었다. 19세기초 민족 해방자의 이름을 본따 볼리비아를 건국했으나 여전히 백인계가 지배하고 그들을 조종하는 서양 자본이 독점하여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은 굶주렸다. ?1952년 혁명에 의해 민주개혁이 시작되나 1964년이래 쿠데타의 악순환에 민중은 더욱 시달렸다. 10년 남짓했던 민주 개혁기에 산히네스를 중심으로 한 젊은 영화인들이 성장하여 1966년에 '우카마우'를 제작하면서 그 이름을 딴 영화 제작 집단을 형성했다. 영화는 오직 민족 해방 투쟁을 돕기 위한 것이고 그 적은 제국주의라고 명백하게 선언한 그들은 원주민과 백인계의 갈등을 국어인 스페인어가 아니라 원주민 언어로 제작했다. 그것은 이미 제3세계 영화의 고전이 되어 이 땅에서도 회자된지 오래이다. 그러나 군사 정권은 제작진을 전원 해고하고 제작소를 폐쇄했다.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원조라는 미명 하에 강제된 불임수술에 저항하는 농민들을 다룬 '콘돌의 피'를 만들었으나 공개 즉시 상영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만 25만 명이 관람했고 2년 뒤에는 미국 평화봉사단이 추방되었다. 1970년대에 와서 망명한 그들은 남미 여러 나라를 돌면서 현지 영화인들과 협력하여 국경을 넘는 '남미'영화, 아니 '제3세계'영화를 만들었다. 곧 게릴라와 노동자 그리고 농민의 연대투쟁을 다룬 와 선교활동으로 분열된 원주민 공동체의 비극을 다룬 , 쿠데타에 항거하는 민주 투쟁을 다룬 등을 계속 발표했다. 은 1989년에 제작된 그들의 최근작으로 산세바스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감독소개

보르헤 산히네스

#감독 약력1995 Para Raciber el Canto de los Pajaros( The bird's singing)감독/편집/각본 1989 La Nacion Clandestina 감독/편집 1974 El Corajo del Pueblo(The courage of the people) 감독 1971 La Notte di San Juan 감독/편집1969 Yawar Mallku (Blood of the Condor) 감독/편집/제작/각본1966 Ukamau (And so it is) 감독/각본#감독 수상경력1972 베를린 국제영화제 OCIC Awards 영화명: Coraje del pueblo, El (1971)1966 로카르노(Locarno) 국제영화제 Special Mention 영화명: Revolución (1963)1989 성세바스찬 국제영화제 Golden Seashell 영화명: La Nacion Clandestina#작품 수상경력1989 성세바스찬 국제영화제 Golden Seashell

인권해설

구아라니, 파라카나, 콜라, 토바, 오고니, 리수…. 이 생소한 이름들은 무엇일까? 아주 오랫동안 자신들의 땅에서 살아왔으나, 이제는 발붙일 곳 없는 땅끝에서 살아가야 하는 선주민의 이름들이다. 북아메리카에 150만,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에 1300만 등 현세계에는 3억 정도의 선주민 인구가 살아가고 있다.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이주에 뒤이은 세계시장의 발전으로 이들의 삶은 황폐화의 길을 걸어왔다. 전쟁과 질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토지와 다른 자원을 빼앗겨야 했으며, 오늘날 그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로,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고 있다. 한 예로 미의회의 알라스카 선주민에 관한 보고서는 "선주민은 이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며, 질병과 알콜 중독, 자기파괴적 행동, 문화적 붕괴, 자존감의 상실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수 주민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가장 격렬한 대립은 보통 땅을 둘러싼 것이다. 많은 선주민에게 땅은 그들 전래의 생존 방식, 사냥이나 채취를 위한 대상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땅은 그들에게 정신적, 심리적 안정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에게 남아있는 얼마 안되는 땅조차 자원을 개발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국가와 다국적 기업의 끊임없는 침탈로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선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에 대한 통제권을 얻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유엔은 이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하여 95년부터 10년간을 유엔이 정한 '국제선주민의 해'로 정했다. 이 기간이 끝날 때면 선주민 인구가 그들이 속한 국가와 평화로운 대화 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을 것인지, 이들의 땅에 가해온 다국적 기업의 끊임없는 자원 착취에 있어 어떤 태도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선주민이 자신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기 위한 국제적 지원이 있을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이들은 땅끝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스틸컷

지하의 민중 스틸컷1
지하의 민중 스틸컷2